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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먼산을 본다

흰산 큰산 큰강 긴강 강강

by 인천송도인 2022. 1. 19.

나이를 먹어가니까 여행 프로그램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맘만 먹으면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심코 스쳐 지나가듯 여행지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저 TV 속의 화면마저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처음 보는 여행지 장면의 대부분이 마지막 장면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이국적이거나 신비스러운 것에 마음이 쏠리기도 합니다.

몽블랑은 흰산

자칫 언어 사대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의 명산인 몽블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몽블랑은 산이란 뜻의 '몽'과 희다는 뜻의 '블랑'이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그 멋들어진 산을 그냥 우리말로 흰산이라고 표시하면 특유의 이국적인 맛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몽블랑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 내 생애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셨나요? 만약 흰산이라고 들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북미의 최고봉 '매킨리'

그러고 보니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속담으로도 유명한 중국의 태산도 우리말로 하면 그저 큰 산이네요. 이것도 그냥 큰 산으로 부르면 그 장엄함과 권위가 스르륵 사라지는 느낌이지요.

 

그밖에 북미의 최고봉인 매킨리도 원주민 인디언 말로는 큰산이라네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 말로 위대한 산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제목을 위대한 산의 표범이라고 바꾸면 역시 느낌이 팍 죽네요.

나일은 강강

강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나일 강은 그 나일이 셈어로 하천 또는 강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강강'이라고 해야겠네요. 좀 우습죠.

 

미시시피강

미국 미시시피 강은 오지브웨이 족 말로 큰 강이라고 합니다. 흙탕물이 흐르는 중국의 황하는 알다시피 우리말로 하면 누런강이고, 장강이라는 강은 긴강이 되겠네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과 강들의 멋들어져 보이는 이름이 알고 보면 본래 뜻이 흰산 큰산 큰강 긴강이라니 조금 허탈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장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기니까 긴강, 크니까 큰산, 희니까 흰산… 더 이상 뭐라 붙일 말이 없네요.

 

어쨌든 흰산 큰산이 아니라 몽블랑 매킬리로 이들 명산을 알게 되어 이국적이고 신비스러운 감성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소중한 우리말을 겉멋에 치우쳐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원어가 주는 색다른 감성도 잃을 수 없는 자산 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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