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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그리고 송도/인천에 간다5

명품 라면 진솔하단 말이 갈수록 제 가슴을 후벼 팝니다. 라면 하나라도 제대로 끓이면 세상의 주목을 받는 세상입니다.   라면 맛집이 있습니다.스프도 자기식대로 벼라별 양념을 조합해 만들었습니다. 라면에 육수가 있다는 것이 뜨아하지만 역시 갖은 재료를 조합해 육수를 만듭니다. 이러려면 차라리 라면탕을 만들지. 제가 가장 기억에 남을 라면이 있습니다. 젊었을 적 꽤죄죄한 방위복을 입고 들른 한켠짜리 분식점이 있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주인 아주머니가 절 불쌍히 보시며 끓여주신 라면이었습니다. 벼라별 양념과 재료의 조합은 하나도 없었지만, 제게 대한 연민으로 끓여주신 날 것 그대로의  라면. 공깃밥 한 그릇을 아무 소리 없이 제 자리에 드려밀어 주신 그 손길. 자신도 분식점 월세마저 버거울 입장에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 2024. 7. 29.
왕비의 고장 인천 사실 왕비가 미인이란 논리는 성립하진 않지만 미인일 것이라는 로망이 우리에겐 잠재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엔 왕비라면 오히려 현숙하고 후덕하신 분을 간택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미인대회 축사 같은 경우 내 고장에 왕비가 여럿 배출됐다고 말하며 미인의 고장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실제로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어디일까요? 과연 그곳에 많은 미인들이 있을까요? 어쨌든, 여주가 역대 임금의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라고 합니다. 여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총 11명의 왕비와 빈을 배출하였습니다. 여주에서 출생한 3명의 왕비를 살펴보면 이방원의 부인이자 여장부로 알려진 원경왕후 민씨, 영조가 66세에 새 장가를 들었던 정순왕후 김씨, 일본에 의해 시해된 명성왕후 민씨까지 전부 내력이 .. 2021. 12. 27.
‘인천의 과거’에 들어가며 제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미인대회는 전국적으로 큰 행사였습니다. 지역대회인 미스 인천 선발대회에도 시장님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는 것이 당연했을 정도입니다. 시장님 축사의 원고를 작성하던 자리에 있었던 저도 이리저리 자료를 구해서 인천을 왕비의 고향이라며 적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과연 인천이 왕비의 고향인지 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제 블로그는 전문 학술 싸이트가 아니라는 핑계삼아 인천의 과거를 두서없이 접근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인천에 처음 살았던 사람부터 짧게 나마 미추홀이란 이름으로 도읍이었던 비류 백제인을 거쳐 대한민국 3대도시의 시민까지 인천인의 족적을 한 조각이라도 흩어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인천의 과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이제는 과거인으로 변한 저의.. 2021. 12. 27.
동인천 참외전거리 어렸을 적 동인천에 살았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 인현동이였는데 요즘으로 치면 인천의 평창동 혹은 청담동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요? 아무튼 그곳 인현동에서도 1번지여서 친구들에게 “나 인현동 1번지 살아”하면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고생 끝에 1970년대 무렵 그곳에 삼층 건물(그 당시엔 이것도 고층 건물에 해당했고, 지금으로 치면 최소한 10몇 층 빌딩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지녔겠지요)을 올렸고 주변으로부터 평생 먹을 것을 마련했다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 말의 효력이 제 기억엔 10년을 못 가더군요. 아파트가 생기고 공단이 생기고 고속도로가 생기고 상권의 중심이 주안 부평 등으로 옮겨지면서 동인천은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우리 집 바로 길 건너편에 있던 참외전거리를 가.. 2021.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