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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그리고 송도/인천에 간다

왕비의 고장 인천

by 인천송도인 2021. 12. 27.

사실 왕비가 미인이란 논리는 성립하진 않지만 미인일 것이라는 로망이 우리에겐 잠재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엔 왕비라면 오히려 현숙하고 후덕하신 분을 간택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미인대회 축사 같은 경우 내 고장에 왕비가 여럿 배출됐다고 말하며 미인의 고장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실제로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어디일까요? 과연 그곳에 많은 미인들이 있을까요?

 

어쨌든, 여주가 역대 임금의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라고 합니다. 여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총 11명의 왕비와 빈을 배출하였습니다. 여주에서 출생한 3명의 왕비를 살펴보면 이방원의 부인이자 여장부로 알려진 원경왕후 민씨, 영조가 66세에 새 장가를 들었던 정순왕후 김씨일본에 의해 시해된 명성왕후 민씨까지 전부 내력이 만만치 않은 분들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가 미스 인천선발대회 축사에서 인천을 왕비의 고장이라고 언급한 것이 결코 과장되지 않은 것은 인주(인천) 이씨 출신 왕비가 여럿 있어서입니다. 이분들은 고려시대 황금기에 왕실의 여주인으로서 위세를 떨쳤습니다.

 

인천 연수동에 있는 인천이씨의 중시조인 이허겸의 묘려(墓閭) 원인재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 문종(文宗)의 비(), 고려 척신 이자연의 딸

인경현비(仁敬賢妃): 문종(文宗)의 비(), 고려 척신 이자연의 딸

인절현비(仁節賢妃): 문종(文宗)의 비(), 고려 척신  이자연의 딸

장경궁주(長慶宮主): 순종(順宗)의 비()

정신현비(貞信賢妃): 선종(宣宗)의 비()

사숙태후(思肅太后): 선종(宣宗)의 비()

원신궁주(元信宮主): 선종(宣宗)의 비()

문경태후(文敬太后): 예종(睿宗)의 비()

연덕궁주(延德宮主): 인종(仁宗)의 비()

복창원주(福昌院主): 인종(仁宗)의 비()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분은 인예순덕태후(이하 인예왕후)입니다.

 

고려 왕조의 최전성기는 11대 문종 시절입니다. 문종은 정치, 사회, 문화, 외교, 학문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획기적인 발전을 일궈 낸 왕으로 조선의 세종에 비길 만한 인물입니다.


이렇듯 문종 시대를 고려의 황금시대로 이끈 두 인물이 있었는데, 최충과 이자연입니다. 이 두 사람 중 이자연은 문종의 오른팔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인주 이씨 가문이 오랜 세월 동안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자연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이자연은 세 명의 딸을 문종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중 맏딸이 인예왕후이고, 둘째가 인경현비, 셋째가 인절현비였습니다.

맏딸 인예왕후는 10 2녀의 많은 자녀를 낳았는데, 그중 장남이 12대 순종이고, 차남이 13대 선종, 삼남이 15대 숙종이었습니다. 아들 셋이 왕이네요. 또 넷째는 천태종을 창시하여 승려로 이름을 남긴 대각국사 의천이었으니 인주 이씨 가문을 권문세가로 만든 주역은 단연 인예왕후였습니다.

그녀 덕분에 이자연은 차관 격인 이부상서 참지정사에 임명되었고, 이어 1050년에는 부총리 격인 내사시랑 평장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인예왕후가 1052년에 왕비로 책봉되자 최충의 뒤를 이어 총리 격인 시중에 올랐습니다.

 

이후로 이자연은 11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이자연의 집안은 고려 최대의 권문세가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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