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동인천에 살았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 인현동이였는데 요즘으로 치면 인천의 평창동 혹은 청담동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요? 아무튼 그곳 인현동에서도 1번지여서 친구들에게 “나 인현동 1번지 살아”하면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고생 끝에 1970년대 무렵 그곳에 삼층 건물(그 당시엔 이것도 고층 건물에 해당했고, 지금으로 치면 최소한 10몇 층 빌딩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지녔겠지요)을 올렸고 주변으로부터 평생 먹을 것을 마련했다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 말의 효력이 제 기억엔 10년을 못 가더군요. 아파트가 생기고 공단이 생기고 고속도로가 생기고 상권의 중심이 주안 부평 등으로 옮겨지면서 동인천은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우리 집 바로 길 건너편에 있던 참외전거리를 가득 매운 상인들 짐꾼 경매아저씨 과일 사러 온 아주머니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참외 출하기에는 갓 도착한 참외의 향긋한 냄새와 유통 중에 버려지는 곯은 참외에서 나는 향기(?)가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도 어느새 점점 맡기 힘들어지더군요.
저는 어려서 참외전거리의 뜻을 제대로 몰라 어른들이 채미전거리라고 하는 것을 귀에 들리는대로 차메정거리 정도로 부르곤 했고 나중에 그것이 참외전거리 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채미는 참외의 황해도 방언이라 하니 항해도 피난민들이 많이 살던 인천에서는 채미전거리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물건 살 돈도 없었고, 내겐 통학길도 아니다 보니 친구들과 술래잡기할 때 그저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몸을 숨기기위해 이곳을 찾은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물리적 장소로 기억나기보다 냄새로만 기억나는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어렸을 적 잘못 부르던 이름을 참외전거리로 고쳐 부르며 좀 더 가까이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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