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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그리고 송도/인천에 간다

‘인천의 과거’에 들어가며

by 인천송도인 2021. 12. 27.

제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미인대회는 전국적으로 큰 행사였습니다. 지역대회인 미스 인천 선발대회에도 시장님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는 것이 당연했을 정도입니다. 시장님 축사의 원고를 작성하던 자리에 있었던 저도 이리저리 자료를 구해서 인천을 왕비의 고향이라며 적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과연 인천이 왕비의 고향인지 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제 블로그는 전문 학술 싸이트가 아니라는 핑계삼아 인천의 과거를 두서없이 접근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인천에 처음 살았던 사람부터 짧게 나마 미추홀이란 이름으로 도읍이었던 비류 백제인을 거쳐 대한민국 3대도시의 시민까지 인천인의 족적을 한 조각이라도 흩어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인천의 과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이제는 과거인으로 변한 저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정도로 그칠 줄 모르겠습니다. 

 


미추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주몽()의 두 아들 비류( : 불류라고도 발음함)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온조는 하남()의 땅을 택하고, 비류는 미추홀에 가서 살았다.”고 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매소홀현()을 또한 미추홀이라고도 하였다.

‘매소홀()’의 ‘매()’자는 믈(물)의 한자표기이다. 예컨대, 『삼국사기』 지리지에 ‘수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매홀군()’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성()’은 ‘홀()’에 해당하며, 〈용비어천가〉에서 ‘소홀도()’를 ‘죠골셤’이라고 한 데서 추()는 성 또는 홀이 되며 홀은 골의 한자표기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추홀은 ‘매ㅅ골’이 된다. 물론, 수성군은 지금의 수원이고,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같은 이름의 지명이 많은 것은 고대의 지명이 대개 지형이나 지세에 따라 지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미추홀은 바닷가이고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잘 살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지리적으로 보아 지금 인천의 땅에 잘 맞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추홀 [彌鄒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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