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30 거룩한 식사 <황지우>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나이 먹다 보니 어느새 앞머리뿐 아니라 뒷머리도 삐죽삐죽 제멋대로 인 것을 식당의 거울을 통해서 보게됐다. “그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며 그것이 거룩(?)한 식사라고 시인은 눙친다. 하긴 먹어야 사는 우리에게 "거룩은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황지우(1952~)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발표, 등단한 시인 황지우.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는 전혀 다르다. 195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으로.. 2021. 12. 30. 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몇 줄(6줄) 안되는 詩라 통째로 인용하고 싶었으나 내가 행복한 詩間을 써 내려가는 의미는 마치 초현실주의 미술에 있어서 자동기술법처럼 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적 상태로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시 한 편을 바라보고자 함이니 의미가 있던 없던 말이 되던 안되던 그저 한 두줄을 건져본다. 물 먹는 소는 할머니처럼 나이 먹은 소겠다. 그저 커다란 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할머니는 오늘 하루도 같이 힘든 하루를 보내 준 것만으도 고마울 뿐이다.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서로를 위로하며 거친 손을 말없이 소의 목덜미에 얹는다. 김종삼(1921~1984) 《원정》, 《돌각담》으로 등단했다. 초기에는 순수시를 지향하였으나 이후 점차 현대인.. 2021. 12. 30. 새들은 <에밀리 디킨슨> 태양은 동녘을 독점하고 대낮은 세상을 지배하고 찾아온 기적도 망각인 듯 이루어지다 태양이 동녘을 독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는 동녘에서 떠서 종일 대낮을 지배하고 세상을 호령하지 않는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동녘을 내주고 서녘으로 사라지지만 그는 내일 또다시 이 세상을 지배하려 오지 않은가? 이 당연한 것도 시인에게는 기적이다. 당연한 것을 기적으로 발견하는 놀라운 혜안이 부럽기만 하다.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1886) 1830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앰허스트에서 출생하였다. 독실한 청교도 가정에서 자랐다. 이별, 죽음, 영원 등의 소재를 즐겨 다루었다. 운율은 17세기 풍에 가까웠으나 기법은 파격적이었다. 2021. 12. 30. 옛 연인들 <김남조> 그 시절 여자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손뜨개 털장갑을 선물했으나 나만이 그거나마 단 한 번 못했으니 그 시절 남자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돈 있으면 18금, 없으면 구리반지라도 선물했으나 나만이 그거나마 단 한 번 못했으니… 김남조(1927~)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사랑과 인생을 섬세한 언어로 형상화해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는 계관시인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인간의 영혼을 고양하는 사랑의 원초적인 힘을 종교적 시각에서 승화시켜 노래했다. 2021. 12. 30. 이전 1 ··· 94 95 96 97 98 99 100 ··· 108 다음